잊지 못하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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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위치 닉네임: 릴리빈

제목: 잊지 못하는 말

내용:


1610년 11월 17일 광해군(2년)

창문 밖에서 차가운 눈송이가 코끗을 아련하게 적셨다.

“오늘은 눈이 많이 내렸구나”

눈과 함께 들어 온 직선의 빛이 방 안을 가로질러 들어왔다.

항상 아침의 기분을 느끼게 해 주는 기분 좋은 따듯한 빛

나는 마저 남은 잠을 깨우려 뺨을 톡톡 두드렸다.

“장 씨 아주머니께 진 빚이 있으니 오늘도 열심히 해야겠다.”

끼이익- 하는 소리와 함께 우수수- 소리가 들린다.

밖에 쌓인 눈이 방 안을 멋대로 침범했다.

“앗, 차거!”

발목까지 덮은 눈을 몇 번의 발길질로 털어내고

치마를 잡아 올리고 첫 밟을 내딛었다.

그 위로 가득 쌓인 눈을 뽀드득 뽀드득 걷는다.

내가 살고 있는 곳은 산 속 작은 초가집이다.

안주인인 아주머니가 산 속을 헤매던

나를 거두어 친어머니처럼 키워주셨다.

사실 나는 어디서 태어나 어떤 사람인지 잘 모른다.

그저 굶주린 채로 방황하던 시절이

내 다른 기억을 집어 삼킨 기분

이 이외의 기억은 잘 모른다.

장 씨 아주머니는 먼 친척을 만나러 돌아가시고

1년 동안 자리를 비우셨다.

나는 이 집을 최대한 잘 관리하면서

혼자서 살 수 있는 능력을 키워야 한다.

그것이 내가 장 씨 아주머니께 갚을 수 있는 보은


1일 10시간


나는 집에서 베를 짜 옷감을 만들고 시장에 파는 일을 하고있다. 비단 같이 고급진 재료는 아니지만 꽤 유통하기 편하고, 통기성, 유기성을 지닌데다가 옷이 빨리 헐기 때문에 팔아먹기 좋은 재료다. 가끔 산에 나는 약재나 버섯, 향신료, 농산품 따위를 지게에 싣고 팔 때도 있다.

물론 이런 겨울에는 그런 작물들이 하나도 없으니

가져다가 팔 수는 없다.

아무튼 이렇게 해 질때까지 팔고 나면,

시장에서 한 소쿠리 가득 장을 보고, 청년에게 간다.

(어제 안 사이지만.. 이름은 김 사월이랬나.. 첫 인상은 엄청 훈훈하게 잘 생겼다 그리고.. 순하고 착하고…. 어쩌면 내 타입일지도..) 

아무튼! 장작을 얻고 나면 하루의 일과가 끝이 난다.

하지만 그렇게 지친 몸을 이끌고 산을 오르기란 쉽지 않다.

그래서 그 청년은 항상 소달구지를 끌고 산길을 동행한다.

“아 사월아 여기에서 내려 줘, 빨리 돌아가야 하잖아.”

청년은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괜찮아. 어머니 감기 다 나으셨어, 여기 앞만 지나면 이제 집 앞이지? 거의 다 왔으니까 무리하지 않아도 돼.”

청년은 내가 부탁하지는 않지만 매일같이 이렇게 나에게 호의를 배푼다. 집에 부양해야만 하는 모친이 있다고 시장 아주머니들께 들었는데…. 나를 과하게 신경써줘서 왠지 미안한 감정이 든다.

어느새 이런 저런 생각을 마치고 나니 덜컹대는 소리와 함께 달구지가 멈춰 섰다.


18시간


“정말 괜찮은거지? 아 그리고 이거!”

나는 주머니에서 약초 하나를 꺼냈다.

“아.. 아로야.. 이거 귀한거 아니야? 이걸 왜….“

나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매일 오지랖만 부리는 당신에게 주는 선물~ 맨날 나한테 그렇게 신경 쓰면 어머니가 싫어하실걸? 가서 효도하라고 주는거야.”

“고마워….”

청년은 얼굴을 붉히고는 잽싸게 소에 올라탔다.

나는 손을 흔들어 주고는 오늘 하루의 피로를 하품으로

치환했다. 기분 좋은 나른함이였다.

나는 대충 저녁을 먹고 누웠다.

평화로웠던 일상이 무너지기


8시간 전….


눈이 유달리 더 많이 내리는 새벽이였다.

추운 바람에 떨다 몸이 반응해 깨어 일어났다.

나는 눈을 비비며 밤 공기를 쐬고 싶은 마음에 몸을 일어켜 세웠다.

짤랑-

어디서 무당이 차는 칼에서 나는 종소리 같은게 들린다.

그 소리가 무척이나 신비로워서

나도 모르게 그 소리를 따라 걸어가기 시작했다.


짤랑-


거긴…. 마을의 방향인데..


짤랑-


저기 팔이 뜯긴 채로 비명을 지르는 사람은 누구지….


짤랑-


모르겠다…. 너무 피곤해….


짤랑-




“헉!”

단말마와 같은 소리와 함께 눈을 떴다.

그리고…. 내 앞은….

피로 범벅이 된.. 청년이…. 아니.. 나는 그의 이름을 안다….

그는…. 아마도.. 사월아?!!

“야! 너 왜 그래 왜 다쳤어??”

나는 사월을 끌어 안고 뺨을 두들겼다.

뒤에서 힘 없는 말이 들렸다.

“..물….”

나는 그 소리를 듣지 못했다.

아니.. 들었다….

들었음에도.. 나는 이해하지 못했다….

‘뭐?! 제정신이야? 그게 무슨 소린데’

뒤에 있던 사람은.. 사월이의 노모였다….

그녀는 나를 죽일 듯 쏘아보고는..

다시 외쳤다..

“이 괴물!!!!!”

순간 내 이성의 끈이..

끊겼다..

정신을 차리고 그 집을 나올 땐,

이미 그녀와 그는 싸늘하게 식은 시체가 된 상태였다.

그리고 마을은.. 온통 피로 가득해서…. 윽..


나는 필사적으로 어제의 기억을 돌이켜 보려고 노력했다.

울며, 소리치며

어제의 보이지 않는 깨진 거울을 필사적으로 맞춰갔다.

다 맞추려고 할 때면, 계속 떨어져서..

우수수-

우우.. 나는 이제 어떻게 해야 되는거야..

나만 살아 남아서 무슨 의미가 있는 거야..


그때 갑자기

짤랑-


“!”

나는 뒤를 돌아 봤다.

뒤에는 도깨비 가면을 쓴 8척 정도 되어 보이는 남자가 왼쪽에는 칼을 차고 오른손에는 종을 들고 서 있었다.

“넌 대체 누구야…. 대체 무슨 꿍꿍이야”

그는 내 말을 무시했다.

“대체 뭐냐고! 왜 나만 살려 둔 거냐고!!”

“…”

나는 그의 침묵에 울분이 터져 눈물이 새어나왔다.

“나도 죽여! 너는 가능하잖아!! 나를 죽이고 이 마을을 없애든지 해줘! 우우…. 나 혼자 살아남는건.. 너무하잖아… 흑..”

그는 종을 한번 더 짤랑- 울렸다.

그때 나는 기시감과 함께 쓰러졌다.

그리고 내가 힘들게 맞추려던 기억의 조각들이….

맞춰졌다..

사월이는…. 내가 죽였다..

죽어가던 그 녀석은 여전히 웃고 있었다.

“으윽.. 아로야. 너가 미쳐서 나를 죽이려는건 너가 의도한게 아닐거야. 만약에 너가 이 말을 듣는다면, 그리고 내가 이미 죽어있다면, 꼭 이 한마디 만큼은 지금 너에게 전하고 싶어.”

그때 나는 광분해있는 상태에서도…. 뜸을 들였다..

“하하…. 너에게 죽게 될 줄은 몰랐는데.. 뭐, 미련은 없어 널 굉장히 사랑했어. 이제 그 손톱으로 날 편하게 해줘.”


으아아악 그런걸 누가 바랬겠어!!!

나는.. 너를 죽이고 싶지 않았어

미쳐있던 내가 너를 향해 뜸을 들인 걸 너도 알았지!!

그치만…. 이미 죽어버린 너에게 이런 말을 전해도….

너가 그 마음을 알았을지…. 너가 편하게 죽었는지 모른다..

미안해…. 사랑해…. 미안해….


그리고 원치 않았던 기억이 하나 더 돌아왔다.

장 씨 아주머니가 마차를 타고 돌아오실 무렵

마차꾼이 아주머니께 물었다.

“이런 산 속에서 사시는 겁니까? 듣기로는 딸과 함께 사신다고..”

아주머니는 홀홀 웃으면서 말했다.

“아이고…. 딸은 없지만 딸같은 아이는 하나 있어요.

무척이나 귀엽고 애교도 많아서 꼭 옛날에 죽은 딸 같아서…. 그 아이는 과일을 그렇게 좋아하는데..”

덜컹-

마차가 심히 흔들렸다.

“아이고 아주머니 죄송해요 어디 짐승이라ㄷ..”

마차꾼은 목이 깔끔하게 날아갔다.

아주머니는 벌벌 떨며

그리고 자신의 피로 물든 배를 감싸지 않고

아로의 얼굴을 감싸며..

“아이고…. 내 새끼.. 정신 차리려무나…. 그동안 외로웠지? 아주머니가 진짜 어머니처럼 되지는 못 했구나.. 미안하다…. 그래도 사랑한다 아로야..”


으아아아앙-

나는 어린 아이처럼 그대로 자리에 앉아 울었다.

왜 이런 기억이…. 나는.. 무슨 짓을…. 으아아앙-

가면을 쓴 남자는 그제서야 흥미롭다는 듯 얼굴을 둘이대고는 말했다..

“너는 요괴란다. 사람을 홀리고 잡아먹는 요괴, 너희 진짜 부모님은 인간들에 의해 죽었어. 너가 인간에게 복수하는 건 당연하단다? 쿠쿠쿠쿡…. 이것이 진실이고 너의 존재의 의미다.”

나는 그를 그 자리에서 씹어먹을 기세로 덮쳤다.

“산 채로 죽여주마 이 새끼야-!!”

“크크크크 그래 그 증오다! 그 기세야!”

나는 콱 목을 비틀어 그를 죽였다.

그에도 성에 차지 않아 장기를 파헤치고

얼굴 가죽을 뜯었다.


…. 내게 이런 저주를 내린 녀석을

꼭 찾아 죽여주마….

그녀는 그렇게 마을을 떠나 자취를 감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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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진짜 야무진 스토리..선생님 디엠주세요 치킨 드릴게여